필자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밝히자면, 어렸을 적 연말 카드용 사진 찍는 걸 엄청나게 싫어했다는 것이다. 보통 집 근처 경치 좋은 곳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거나 엄마가 그해 원하는 분위기를 아빠가 거실에다 꾸며 놓으면 거기서 온종일을 보내곤 했다. 사진 찍는 데 몇 시간씩 걸렸기 때문에 항상 결국 내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부모님이 딱 한 장만 더 찍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떼를 쓰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물론 절대 한 장만 더 찍는 경우는 없었다.)
어른이 된 후 절대로 연말 카드를 보내지 않게 된 건 바로 이런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난 연말을 정말 좋아하고 여자친구도 그렇다. 11월이 되자마자 크리스마스 음악을 트는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는 연말에 쓰레기통에 버려질 그저 그런 카드를 보내는 것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는 부득이하게 연말에 집에 못 가게 되었다. 그래서 연말 카드를 보낼 거라면 특별하게 만들자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카드를 산타 할아버지 썰매처럼 상상 이상으로 초월하는 수준이어야 했다. 우리는 연말연시 카드의 끝판왕을 만들기로 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연말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11월에. 우리처럼 연말에 집에 못 가는 친구들을 초대해 그 친구들도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 멀리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여기(거기) 같이 있었으면 좋겠네요”하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파티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야 했다.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마치 파티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하려면 360도 영상을 담은 잊지 못할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사용이 간단해 보이는 Samsung Gear 360을 쓰기로 했다. 설치는 간단했다. 스마트폰에서 Gear 360 Manger 앱을 통해 동기화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Gear 360은 작고 휴대가 가능했기 때문에 식탁 장식 밑이나 커피 테이블 위 뿌려진 가짜 눈 밑에 숨길 수 있어 눈에 거슬리지 않기를 바랐다. 연말 파티의 매 순간을 디지털 스노 글로브로 재탄생 시켜줄 장치였다.
사실 내게 파티를 여는 건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모든 디테일에 신경 쓰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파티를 즐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게 어느 구석에서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는지 걱정하며 과자 그릇을 채우기를 반복하고는 한다. 게다가 이번 파티는 연말 카드로 쓸 수 있을 만큼 근사해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있었으니 잘못하면 엉망진창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다행히 Gear 360 덕에 모든 게 예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연말 카드용 기록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부엌에 배치하고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음식이나 배경 장식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포착할 수 있었다. 포착된 순간에는 두 사람이 연말 파티 준비를 잘했다며 서로 격려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이 연말 카드를 받게 될 우리 가족이 생각났다. 매해 크리스마스에 부모님 댁에 모두가 모여 작은 주방에서 복작거리며 자기만의 연말 요리를 만들던 기억이 났다. 평면 사진에는 담아내기 힘든 느낌이었다.
또 다른 걱정은 과연 360도 각도 사진이 연말 카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애써 꾸며 놓은 연말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장식 하나하나마다 옥신각신하며 고른 것이었다. 일단 크리스마스 장식 조명은 최대한 많이 쓰자는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 리본도 남발하기로 했다. 액자가 없어 허전한 벽에도, 배달 메뉴로 뒤덮인 냉장고 문에도 리본을 달았다. 하지만 파티가 무르익으면서 찍힌 360도 각도 사진에는 장식품이나 장식의 위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사진 속에는 스웨터와 산타 모자를 쓴 손님들이 파티를 즐기는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Gear 360이 파티 한복판에서 360도 시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찍힌 사진의 핵심은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이 ‘연말카드’를 받는 이들도 장식보다는 모인 사람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연말 파티를 열어보니 부모님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 파티를 계획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은 완벽한 연말 카드용 사진을 찍기 위해 내게 이런저런 포즈를 강요한 엄마의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했다. 파티의 화려한 사진 배경은 아빠가 내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든 거실 스튜디오도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님이 완성품을 보고 얼마나 뿌듯해하셨을지 이해할 것 같다. 우리가 찍은 360도 각도 스노 글로브 사진은 기억에 남을 장면을 정말 많이 포착했기 때문이다. 모두 잔을 들고 이번 연말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던 순간이나 저녁 식사 중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낼 사진을 찍거나 그들과 화상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꺼내 들었을 때처럼. 바로 그런 순간을 이 카드를 받는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우리가 파티에서 느낀 연대감을 그들도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연말을 규정하는 건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느낌이니까.